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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평전 - 슈테판 츠바이크 <4/50>

에라스무스평전종교의광기에맞서싸운인문주의자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슈테판 츠바이크 (아롬미디어,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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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라보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시선이 좋다. 



p39.

  16세기의 인간은,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마다 항상 승리감을 안겨주었던 자신감 덕택에 자신이 더 이상 신이 내리는 은총의 이슬에 목말라하는 사소하고 의지력 없는 먼지티끌이 아니라 모든 일의 중심이고 세계의 권력자임을 느낀다. 순종과 어둠은 갑자기 자의식으로 바뀌고 우리는 힘에 대한 그 자의식의 의미심장한 도취감, 그 불멸의 도취감을 르네상스라는 말로 포용한다. 종교의 스승 옆에 정신의 스승이 동등한 권위를 가지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학문이 교회와 어깨를 겨룬다. 여기에서도 어떤 최고의 권위라는 것은 깨지거나, 최소한 흔들리게 된다. 순종적이고 아무 말도 못하던 중세의 인간은 사라지고 예전의 사람들이 믿고 기도하던 열정과 동일한 종교적 정열로 질문하고 연구하는 새로운 인간이 나타난다. 
  지식에 대한 억누룰 수 없는 갈망은 수도원을 나와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서고 있는 연구의 성곽인 대학으로 이동한다. 시인, 사상가, 철학자, 그리고 인간 영혼의 모든 비밀을 알리고 연구하는 자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 것이며, 정신은 다른 형식으로 자신의 힘을 쏟아붓는다. 인문주의는 종교의 중재 없이 신을 인간에게 되돌려 주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어느 새 종교개혁의 거대한 세계사적 요구가 처음에는 산발적으로, 그 다음에는 대중의 확신에 의해 고조된다. 
  시대가 달라지는 세기 전환기, 엄청난 순간이다. 유럽은 그 호흡의 순간에 심장, 영혼, 의지, 욕망을 지닌다. 유럽은 전체로서 자신이 변화를 위한 불가해한 명령을 받아 불려나왔음을 강하게 느낀다. 시간은 이미 멋지게 준비돼 있다. 흥분이 여러 나라에서 솟아오르고, 영혼 속에서는 살아숨쉬는 불안과 조급함이 부풀어오른다. 이 모든 것위에 희미하지만 엿듣는 귀가 흔들거리며 떠 있다. 그 귀가 엿듣는 말은 이런 것이다. 그 어려운 과제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말인 ‘세계를 개혁해야 할 의무는 결코 정신에 있지 않다.’ 아니며 목표를 설정해 주는 말, ‘지금 정신에는 세계를 개혁해야 할 의무가 있다’. 


p128.

  에라스무스는 그리스도교와 고대, 자유종교사상과 신학,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같이 일반적으로 험악하게 적의를 품고 대립하는 요소들을 자기 내면에서 화해시킬 줄 알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전 인류가 자기의 다양한 현상들을 행복한 합주로 변화시키고, 자기의 모순들을 더 높은 조화로 변화시키리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세계의 타협, 유럽의 타협, 정신의 타협은 평상시 같으면 차라리 냉정하고 합리적인 인문주의의 유일한 종교적 신앙 요소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는 그 어두운 시대의 다른 정열과도 같은 열정으로 세계의 신앙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인류에 대한 믿음을 알린다. 세계의 편협성, 세계의 공통성에 몸을 바치는 대신 그것을 통해 인간을 더 사랑하고, 더 인간적으로 되는 것이 세계의 정신이고, 목표이며 미래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애 교육을 위해 인문주의가 알고 있는 길은 단 하나 뿐이다. 그것은 인간형성의 길이다. 에라스무스와 에라스무스주의자들은 인격 도야가 되지 않은 사람,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기 정열에 헌신하기 때문에 인간 형성의 교육과 책을 통해서만 인간 내면의 인간성이 고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받은 인간, 문명화된 인간은 - 여기에 그들의 사고가 갖는 비극적인, 잘못된 결론이 있다 - 폭력을 저지를 능력이 없으며, 교양인과 문화인, 그리고 문명인이 우위를 점하게 되면 혼란과 야만은 저절로 사라지고 전쟁과 정신박해는 생명을 다한 시대착오가 되리라는 것이다. 
  인문주의자들은 문명화를 과대평가하는 가운데 길들일 수 없는 난폭성을 가진 충동의 근원적 힘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문화 낙관주의를 통해 거의 해결할 수 없는 끔찍한 군중 증오와 너무도 격한 인류의 여러 가지 정신병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그들의 계산은 어찌 보면 너무도 간단하다. 그들에겐 두 개의 층이 존재한다. 하나는 하위층이고, 다른 하나는 상위층이다. 하위층에는 거칠고 격한, 문명화되지 못한 대중이 존재하고, 상위층에는 교육받은 자, 이해하는 자, 인간을 사랑하는 자, 문명화된 자의 밝은 영역이 존재한다. 그래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위층의 비문화인들을 문화의 상위층으로 끌어올리고 나면 자기들의 주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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