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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설가의 고백 - 움베르트 에코 <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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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지은이 움베르토 에코 (레드박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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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짦게 정리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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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돌프 히틀러와 안나 카레니나가 서로 다른 종류의 실체이고, 양자의 존재론적 지위가 각각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의 학계 일부에서 경멸조로 이야기하는 '텍스트주의자 textualist'가 아니다. 일부 해체주의자들이 그러하듯 사실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해석이, 즉 텍스트가 존재할 뿐이라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퍼스의 기호학을 바탕으로 해석 이론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어떤 해석이든 시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석되어야 할 어느 정도의 사실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틀림없이 텍스트로 존재하는 사실과 단순히 텍스트가 아닌 사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며, 나는 히틀러가 실존했던 사람인 반면, 안나 카레니나는 인간의 모리로 만들어낸 상상일 뿐이라고, 일각의 말을 빌리자면 '인공물'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어쨋든 '언어적 논리'에는 허구적 주장뿐만 아니라 역사적 주장들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학생들이 히틀러가 베를린의 한 벙커에서 죽었다고 쓴다면, 그것은 그들이 배운 역사 교과서에 따를 때 참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나의 직접적인 경험에 의거한 판단을 제외하면, 문화적 경험에 근거하여 내리는 모든 판단은 텍스트상 정보에 바탕을 둔다. '실질적 진리'를 표방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그 정보들은 '언어적 진리'에 불과하다.

그러면 내가 백과사전을 통해 주지의 사실이라고 배웠던 모든 사항들을 '백과사전적 사실'이라고 불러보자. 이러한 단편적 정보들은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내가 과학계를 신뢰하고, 일종의 지식 노동의 분야를 수용하며, 그에 따라 선정한 전문가들로 하여금 그 정보들을 입증하게 했기 떄문이다. 하지만 백과사전적 주장에는 한계가 있다. 언제든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과학 분야에선 원래 항상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으로 기존의 관념이 뒤집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편견 정신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새로운 문헌이 발견되면 히틀러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고쳐야 하고, 새로운 천문학적 측량법이 발견되면 태양과 지구의 거리에 대한 믿음을 바꿔야 한다.

더욱이 히틀러가 벙커에서 죽었다는 사실에는 이미 몇몇 역사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히틀러가 동맹군에 의한 베를린 함락 후까지 살아남아 아르헨티나로 탈출했다는 말도, 벙커에서 불에 타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거나 불에 탄 시신은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말도, 히틀러의 자살은 벙커에 도착한 러시아군이 선전용으로 삼기 위해 날조한 사실이라는 말도, 아직도 벙커의 정확한 위치가 논쟁에 싸여 있는 걸 보면 벙커 자체가 원래 없었다는 말도, 기타 이러저라한 설들도 모두 있을 법한 얘기이다.

반면에, '안나 카레니나는 철도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라는 주장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백과사전적 사실에 관한 모든 주장은 '외적 경험의 타당성 external empirical legitimacy'으로 따지면 시험대에 오를 수 있고, 또 꼭 그래야만 한다. 반면 안나 카레니나의 자살에 관한 주장은 '내적 텍스트의 타당성 interanl textual legitimacy'의 사례와 관련된다. 이러한 내적 타당성에 기초하여 우리는 안나 카레니나가 피에르 베즈호프와 결혼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정신이 나갔거나 식견이 짧다고 무시하게 된다. 하지만 히틀러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그 정도로 무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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