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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 천천히 가끔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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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인쇄된 책 속에서 자율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하나의 피난처를 발견했던 문자는 지금은 광고에 의해 인정사정없이 거리로 내쫓겨나 경제적 혼돈에 의한 잔혹한 타율성에 복종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문자의 새로운 형식에 주어진 엄격한 교육 과정이다. 수세기 전에 문자가 몸을 누이기 시작해 수직으로 서 있는 비문에서 경사진 책생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원고가 되고 결국에는 인쇄된 책이라는 침대에 눕게 되었다고 한다면 지금 문자는 전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다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있다. 이미 신문은 수평으로 놓고 읽는다기보다는 똑바로 세운 상태로 읽혀지며, 영화와 광고는 문자에게 완전히 독재적인 수직 상태로 있을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현대인들이 책이라도 한번 펼쳐볼라 치면 벌써 활자들의 눈보라가 어찌나 자유자재로 변화하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서로 다투며 눈앞을 가리는지 책이 가진 태곳적부터의 고요함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아주 희박해진다. 메뚜기 떼 같은 문자가 오늘날 대도시 사람들이 지식인들이라고 오인하고 있는 태양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데, 그것은 앞으로 해가 갈수록 짙어져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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